40년전 대학시절 학내 데모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도서관에서 전공과목 기사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한 학생이 도서관 한켠에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형제 여러분! 대한민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글이 눈에 들어옵니까! 어서 나가서 동참합시다!” 몇몇 학생들은 동요했지만 나는 그들을 외면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공부했다. ROTC 단복을 입은 학생으로서 준군인(準軍人) 신분이었고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운동권들을 탐탁해하지 않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집단화된 단체의식에 갇혀 있었다. 교장 선생님에게 일방적 훈시를 들어왔고 고등학교 대학교 교련을 통해 군인정신을 강요 당했다. 길을 걷다가도 애국가가 나오면 모두 멈추어서 국기를 향해 경례했던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그 시절 내가 살던 지역의 한 국회의원이 현시국에 대해 젊은세대와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고 정치권 가까이 지내던 이웃주민의 권유로 그 자리에 참석했다. 마지못해 참석했지만 한마디 안할 수 가 없는 분위기였다. “시국이 어수선하지만 도서관에서 자리를 지키며 국가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묵묵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 많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힘을 주어 의견을 냈다. 그 일 있고 며칠 후인가 그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이 담화문을 발표했다. 아뿔싸 내가 그 국회의원에게 말한 내용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발표했다. 결국 나는 그들이 바라는 정당성을 공고히 해주었고 학생들을 더 때려잡는 경색국면에 깊히 빠지게 된 것이다.
군에 있을 때 데모대를 방어하고 해산시키는 충정훈련을 무수히 했다. 유사시 출동해야 하는 지역의 도상훈련과 주요거점에 대한 방어계획을 하달받고 병사들에게 정신교육과 진압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했다. 앞발을 땅에 힘차게 내딛는 위압적인 진압 동작을 반복하다보니 무릎연골에 염증이 생길 정도였다. 얼마 후에 국민투표로 대통령 선거를 치룬다는 발표로 극심한 혼란이 잦아들었지만 연대장 사단장이 대통령 후보와 같은 육사출신인 까닭인지 충정훈련은 멈추지 않았고 대통령 선거에서 비밀투표 원칙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노태우의 100% 가까운 지지율을 이끌어내도록 암암리에 불법적인 행위가 군대 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나는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를 비롯해서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 등 주로 보수세력에 표를 주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렇게 교육받고 성장했으며 군인 출신인 부친과 월남한 모친가계의 이력, 개신교의 반공주의 등에 영향을 받았다. 문재인 대신 안철수를 선택했지만 결국 결단력이 없어 보이는 뜨뜻미지근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명박과 박근혜를 선택했던 원죄에 대한 반성으로 문재인이 잘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보수와 진보를 대통합하여 화해와 공동번영을 바랬지만 보수적폐 탄압으로 인해 적지않은 보수세력으로부터 극심한 비난을 받고 자기이익을 탐닉한 진보참칭 세력들에게 나라곡간을 내주고 보수세력의 의견을 무시하고 북한과 동조한 점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칭 보수세력들의 민낯이 드러나서 불편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검찰의 행태일 것이다. 노무현의 죽엄 앞에 검찰은 반성하고 그의 진정성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명박은 노무현보다 더 청렴하고 더 도덕적인가? 이명박은 자기이익에 탐닉한 부패한 인간이었다. 박근혜는 사심없이 국민을 섬기는 지혜로운 지도자인가? 박근혜는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한 이기적인 인간이다. 보수의 맨 오른쪽편 시각으로 모든 진보세력들을 위선자로서 말살하려는 시도는 중도적 우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같은 보수집단 내에서 조금만 왼쪽에 서있으면 좌파 빨갱이라고 서슴치 않고 욕을 한다. 유시민의 냉정한 판단력과 중도적 시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수도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가 엄청난 욕을 얻어 먹었다.
보수라고 하는 세력 중에서 극열한 부류들은 보수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분리주의자이며 차별주의자이고 냉소적이며 비이성적이고 지극히 편협한 무지한 부류들이다. 평향된 시각을 덧씌우면서 스스로 최악의 지경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구제불능의 인간 군상인 것이다. 이들은 문명을 파괴하고 경제를 망치고 인류를 도탄에 빠지게 할 것이 분명하다. 하늘에서 시시각각 거대한 운석이 다가와도 하늘을 쳐다보지 말라는 부류와 같은 것이다. 이런 부류의 한 인간이 윤석열인 것이다. 그 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잠이 오지 않았다. 배신을 거듭하고 예의와 품위가 없는 허욕이 가득한 인간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차라리 거칠게 살아왔지만 일 잘하고 추진력있는 이재명을 뽑아 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진보적 세력에 동화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나는 중립적인 보수세력이고 그 중심 언저리에 있다고 본다. 너무 오른쪽이나 너무 왼쪽은 극소수여야 하고 중심이 두툼해야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요즘들어 뉴스를 보면 소화가 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분노가 치민다. 어쩌다 저런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심각한 문제는 아직도 그 자를 처단하지 않고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국회의 형편없는 삼류 인간들이 문제이다. 탄핵에 동참하지 않고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회의장 밖으로 나오는 인간들이 제대로 된 인간인지, 그들이 진정 보수세력인지 또 그런 인간들에게 가당치 않은 압력을 행사는 무리들은 보수를 참칭하는 극렬한 위험분자일 뿐이다.
박근혜는 문재인을 문재인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윤석열 다음은 누가 대통령이 될지 걱정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나라가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된다. 보수와 진보가 아우러져 경쟁하고 발전해나가는 시대로 가야한다. 서로 죽일 듯이 대하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퇴사의 변(辯)
작성자 :
2024. 11. 30 (19:05)
불과 며칠 전의 일로 여길 만큼 생생하게 기억한다. 팀장급 차장으로 외부직원을 포함해서 40여명을 거느리고 중요한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하루하루 바쁘게 보냈다. 관리자 직급으로 진급한지 얼마안된 시점이었는데 그 전부터 체력과 정신력이 누수되 듯 소진되고 있었다. 소속된 조직이 그리 크지 않다보니 맡길 만한 관리자 인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워크로드가 몇몇 인원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주어진 기간 내에 일을 완수하려면 야근를 거듭해야하고 체력을 쏟아부어야 간신히 마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유능한 젊은 직원들이 갑자기 퇴직한다는 소식을 알리면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결국 그들도 나와같은 버닝아웃이 주된 이유였다는 것을 나중에 절감했다. 데드라인이 정해진 긴박한 프로젝트를 연이어 수행하다보면 어느순간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공허함과 무력감이 와닿는 시기가 온다. 회사의 미래도 밝지 않았다. 반성문을 쓰듯 절감방안과 자구책, 자체감사결과 등 외부 감사기관에 주기적으로 자료를 제출해야 했고 특히 점령군처럼 낙하산으로 내려온 타회사 출신의 임원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볶이는 일들이 무척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전설 같았던 대단하신 선배직원들이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하는 모습을 옆에서 목도할 때는 자괴감이 들었다. 입사할 때 남부럽지 않았던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여지없이 무너졌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활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묵묵히 조직에 순응하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한창 잘나가는(?) 순간에 왜 퇴직을 선택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쉽게 퇴직할 사람이 왜 죽을둥살둥 일에 매달렸는지도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에너지를 적당히 비축해 가면서 “워라벨”을 맞춰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실패한 것 같다. 인생은 장기전인데 단거리 선수처럼 달리다보니 체력관리를 잘 못한 것이다.
요즘은 취준생이라는 단축어에 빗대어 퇴준생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 비해 취직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대기업과 공기업에 입사한 젊은이들이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다고 한다. 워라벨이 문제이기도 하고 조직문화에 순응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선진국에 들어섰는데 기업문화는 아직도 대부분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입사원 주축인 90년생들은 선진국 국민으로 자랐고 그 이전 세대들은 개발도상국이나 중진국 국민으로 남아있는 시대적 격차가 문제라고 한다. 군대문화에서 도입된 상명하복 조직문화와 상급자가 등을 바라보고 있는 사무실환경을 떠올리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내 뒷자리의 상급자를 잘못 만나면 인생이 꼬이는 것이다. “사수, 부사수”의 문화도 군대문화인데 회사에서 사수를 잘못 만나면 지옥이 열리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로운 선진국 문화를 겪고 심지어 요즘 군대에서도 민주화 분위기를 익힌 젊은이들이 구태의연한 회사 조직에서 꼰대같은 선임들과 부딪히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요즘 앞서가는 회사들은 직급을 없애고 수평적 기업문화를 도입한다고 한다. 팀장과 사장를 투표로 뽑는 회사가 있다. 이 정도가 되어야 참신한 아이디어와 열정이 샘솟지 않을 까 생각한다.
예전의 회사 사무실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부장님은 별도 공간에 계시고 맨뒤 창가쪽에 차장님, 양쪽 날개에 과장님, 그 밑으로 대리님 그리고 고참직원 자리와 뒤쪽에 신입사원인 내자리가 있다. 타자수인 여직원과 사무보조 직원이 출입구 가까운쪽에 있었다. 좌충우돌하며 패기가 넘치던 그 시절이 그립기는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적극 사양하고 싶은 사무실 환경일 것이다.
회사를 퇴직한 사람들과 가끔 모임을 한다. 선배님들 위주로 구성되어 시작했는데 몇 년 전부터 퇴직한 후배직원들까지 합류하여 인원이 제법되는 것 같다. 일찍 퇴직한 사람들끼리는 온실을 벗어나 온갖 풍파를 맞으며 고생했던 동지의식이 있었는데 끝까지 회사생활을 완수하고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에게는 인내심과 성실함은 높이 평가되지만 뭔가 다른 점이 있어서 거리감이 생기는 것 같다. 하여간 만약 정년퇴직이 보장되었다면 과연 일찍 퇴직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 반문해 보고 싶다. 퇴직 이후 굴곡 많았던 고생을 똑같이 되풀이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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