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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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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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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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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큰 아들이 며칠 전 집에 다녀갔다. 지인에게 청첩장을 건네 줄 겸하여 오랜만에 집에 들른 것이다. 학업과 결혼 준비로 수척해진 모습이 신경에 쓰인다. 코로나19로 때가 때인 만큼 여러모로 조심스럽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결혼식을 연기할 수는 없어 부득이 진행할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가까운 지인이라도 선뜻 청첩장을 드리기 송구스럽고 받는 분들 역시 부담스러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큰 아이는 어려서 부터 점잖고 영특한 편이어서 부모에게 큰 걱정을 끼친 적이 없는 것 같다. 스스로 공부에 취미를 붙이고 자신의 장래희망에 따라 진로를 정하는 모습을 보면 여간 대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 입학때부터 기숙사생활을 시작했고 대학교 4년, 대학원 2년, 그리고 박사과정 3년차 총 12년 동안 객지생활을 하고 있다. 큰 아들에게는 따뜻한 집밥 한끼 먹기가 쉽지 않았고 예민한 성격임에도 열악한 단체생활에 적응하느라 고단한 일과를 보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최상위 성적을 유지하였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큰 아이가 착하고 인성이 훌륭하다는 말씀을 들을 때 너무 뿌듯하고 대견스러웠다. 대학교 입학무렵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서 최종면접에 참여해달라는 당부전화를 받게 되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대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지금까지 별탈없이 잘 해오고 있는 큰 아이가 작년말부터 어여쁜 아이를 만나 사랑을 하기 시작했다. 둘다 비슷한 환경에서 만나서 동질감과 위로를 받았는지 어차피 결혼할 계획이니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다고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학업을 마치고 자리를 잡은 후 결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으나 큰 아이는 입장이 확연히 달랐다. 빨리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만혼(滿婚)이 유행인 요즘에 아이들이 간다고 할 때 빨리 보내는 것이 현명하다는 주변의 의견을 받아들여 원하는 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간단히 상견례를 하고 가능한 아이들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어른들이 도와주고 따라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모처럼 큰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식사가 정겨웠지만 이튿날 아침 집을 떠나려 일어서는 아이의 뒷모습이 익숙하기도 하고 왠지 낯설어 보였다. 비로서 우리 큰 아이가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게 된다. 문득 큰 아이가 네다섯살쯤, 퇴근하는 나를 보고 한걸음에 달려오는 큰 아이의 활짝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가슴이 아린 듯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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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영 형(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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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1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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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이 유행이다. 특유의 간드러지면서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예전의 나훈아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아마도 이 곡 역시 크게 히트하리라 예감이 든다. 이 곡의 가사 중간에 테스형이 소크라테스형이라고 밝혀 두었다. 인생의 고민이 생겼을 때 상의하고 싶고 슬플 때 위로받고 싶고 심심할 때 생각나는 그런 기대고 싶은 언덕 같은 형일 것이다. 이런 형이 한 명쯤 있다면 그 인생은 외롭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나에게도 그런 형이 있었다. 내 나이 20대 초반에 3살 연상의 복학생으로 나타난 학교 선배였다. 그 선배는 목소리가 크고 활달하여 동년배 무리의 리더 역할을 주로 했는데 쾌활하고 주도적인 성격과 넉넉한 집안 형편을 배경으로 거칠 것 없는 풍운아처럼 보였다. 후배들인 우리들에게도 친근함과 넉넉한 인품으로 인정을 베풀어주었던 것 같다. 그 선배는 취직 대신에 사업을 시작하여 일찍 자리를 잡는 듯 했으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서 보여주고 싶은 과시욕이 강했던 탓에 내실을 다지지 못하고 결국 잘되지 못했다. 사업을 접은 후 수년간 각고의 고생 끝에 작은 규모이지만 부동산중개업과 건축업으로 재기에 성공하면서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모두 겪어 내공이 깊어진 그런 사람이었다.
나도 그 즈음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다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에 관심을 보일 때 걱정해주던 그 형의 목소리와 표정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비록 나이로는 3살 차이에 불과하지만 인생의 경험은 30년쯤 된 듯 한 그 형의 묵직한 조언을 그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내가 결정한대로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그 형의 조언을 따랐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훌륭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어느 날 그 형이 외국으로 이민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이들 교육과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가야된다는 거였다. 기껏 기반을 잡아놓은 이 곳은 일년에 한번씩 들어와서 단기간만 운영하면 된다는 것이다. 외국으로 훌쩍 떠난 후에 그 곳에서도 자리를 잡아서 사업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형이 말한 대로 일년에 한번씩 국내에 들어와 사업을 한다고 했다. 한국에 올 때 마다 반가운 마음에 그 형을 만나 예전과 같은 익살스럽고 호쾌한 목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했고, 한층 더 여유가 있어 보이는 그 형의 얼굴이 보기 좋았다. “형은 이제 고생은 다 끝났고 이제부터 인생을 즐기면서 재미있게 살면 되겠네…” 그 형에게 술자리에서 건넨 말이다.
그 형이 다시 외국으로 들어 간지 얼마나 지났을까 세상을 등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불과 한달 전에 심심하니 한번 놀러오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몸에 이상이 있었던지 오래되었고 급성으로 진행되어 불과 한달여만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쾌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몸이 좋지 않을 때는 가까운 친구들과도 일체 연락을 끊고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인생의 굴곡이 너무 높고 깊으면 험난하고 쓸쓸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형은 풍운아처럼 우리 곁을 왔다가 너무 일찍 떠났다. 어딘가 살아 있는 듯 그 형의 죽음이 실감되지 않지만 이제는 그 형을 놓아주어야겠다.
“기영이 형, 거기서도 자리 잘 잡고 계세요. 언젠가 만나면 예전처럼 형의 무용담을 들으며 웃고 떠들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 형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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