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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別名)
작성자 : 2022. 03. 27 (22:28)
나의 성격상 별명으로 불리우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기 때문인지 주위의 사람으로부터 별명을 얻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나 사춘기 때에도 잠깐은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별명으로 불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게는 별명으로 지칭될 만큼 개성이 뚜렷하지 않았고 짓궂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쾌활한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의미로는 내가 젊잖은 편이었고 다른 의미로는 “노잼”이라서 별명이 잘 생기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게 별명을 붙이려고 시도하는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내비치게 된다. 별명으로 불리우는 것이 어색하고 어찌 나를 깔보는 것으로 여겨진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살아오는 동안 별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잠깐 동안 놀림감으로서 별명으로 불려졌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어렸을 때 코미디언 배삼룡이 유명해서 배씨 성을 가진 아이들은 한두번쯤 “배삼룡”으로 놀림거리가 되었다. 한 반에 한 명 정도인 배씨에게 배삼룡 딱지가 붙게 되어 코미디라도 하라는 것인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라는 것인지 그저 삼룡이로 놀림 받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별명의 유효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 이후 한참 뒤 대학 신입생 시절에 “배신자”로 잠깐 불려졌다. 친한 친구와 함께 어떤 일로 다른 그룹의 친구들과의 약속을 어기게 되어 나를 포함한 친구들을 배신자로 명명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에도 몇차례 약속을 지키지 못해 배신자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배씨인 내가 대표로 받게 되었다. 청춘일 때는 자존감이 무척 높았던 것 같았다. 배삼룡이니 배신자니 하는 좀스러운 별명에 대해 무덤덤하게 받아들였고 무슨 자신감인지 스스로 대단히 잘난 사람이기에 주위에서 시기하는 것으로 여긴 것 같다. 군 훈련소에서는 한 동기생이 “빠삐용”이라고 잠깐 불렀는데 특별한 의미없이 이름과 어감이 비슷해서 그렇게 별명을 지어낸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한창 하던 시절에 몇몇 친한 선배들께 가끔 커피를 타드렸다. 비오는 날 어둑어둑한 늦은 오후에 커피 한스푼, 설탕 두스푼, 프림 한스푼… 다방 스타일로 한잔씩 나눠 마시며 지친 일상을 달랬었다. 어느날 그 중 한 선배가 나를 “배마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커피를 맛있게 잘 탄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벌써 삼십년 가까이 지난 일이 되었는데도 가끔 모임에 나가면 배마담이라고 부른다. 둘만의 호칭이 아니고 많은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배마담이라고 부르면 그리 유쾌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정을 모르는 선후배들은 왜 마담이냐고 호기심 어린 질문을 나에게 한다. 듣기 거북하다고 부탁해도 자기는 그렇게 불러야 친근함을 더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환갑의 나이에 이르렀는데 마담이라는 별명을 들어야 하다니 웃어 넘기기도 그렇고 정색하기도 그렇다.

그 선배는 나뿐만이 아니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름보다 별명을 곧잘 붙여 부른다. 다행히 그 선배는 인성이 선하고 업무적으로 인간적으로 관계를 잘 맺고 잘 다루는 사람이다. 특히 별명을 통해서 서열관리도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인 것 같다. 하여간 그의 허물없는 친근함이라고 보여지는 것에 대해 속좁게 발끈하여 항의하기는 너무 세월이 많이 흐른 것 같다. 다음에는 별명은 별명으로 젊잖게 대응하도록 해야겠다.

애초에 선의였다고 선의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은 또다른 강제이고 일방적인 악취미와 다름없다. 그 선배도 별명을 통해 얻는 것도 있겠지만 잃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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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책(置簿冊)
작성자 : 2022. 03. 21 (15:33)
오늘 아침, 선배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막내딸 결혼식 축의금에 대한 감사인사였다. 다음주에는 옛 직장동료의 자녀 결혼식이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일년에 지인들의 경조사를 수십차례 겪는 것 같다. 젊었을 때는 본인들의 결혼식과 자녀들 돌잔치, 부모님의 환갑과 칠순 잔치에 초대 받았다면 이후에는 부모님 장례에 대한 부의가 점차 늘어나다가 몇 년 전부터 자녀들 결혼식이 주류를 잇고 있다. 또 세월이 흐르면 본인상이나 처상(妻喪)이 늘어 날 것이다. 이렇게 인생사가 변화되는 것을 보면 당연한 듯하지만 한편으로 슬프고 처량해 보인다.

지인들의 경조사 소식을 들으면 먼저 축의금 명부나 부의록을 찾아 보게 된다. 과거에 지인들이 십시일반 도와준 금액을 깨알 같은 글자로 적어둔 치부책을 들쳐보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생각보다 후하게 도와주셨고 어떤 분들은 박하게 인사치레 한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예전에 기록했던 시기에서 세월이 흐른 것을 감안하고 그 분과의 관계와 나의 형편을 함께 고려하여 적당한 금액을 경조사비로 집행하게 된다.

경조사를 겪을 때면 예를 갖추어 충심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고마운 지인들이 있는 반면에 완전한 타인처럼 무시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물론 대부분의 지인들은 상호부조의 미덕을 지키지만 예외의 인물들은 꼭 있기 마련인가 보다. 분명히 그들에게 성의를 보였었는데 그에 대한 답례가 없는 경우가 가끔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한 적이 있었다. 큰 일을 겪으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공고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허물어지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상호부조를 깨는 사람에게 앞으로의 신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언젠가 연락이 뜸했던 어떤 분으로부터 경조사 소식이 들려왔다. 그 당시 치부책을 꺼내 볼 생각은 안하고 나에게 경조사비를 보낸 적이 없는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아무런 성의를 표시하지 않았다. 몇 해가 흘러 나의 경조사에 그 분으로부터 조의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 치부책을 정리하면서 그 분이 과거에도 몇 차례 성의를 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얼마나 죄송한지 민망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그 이후부터 치부책에 있던 없던 웬만하면 성의를 표시하는 것으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최근에는 여러 권으로 나눠져 있던 치부책을 엑셀로 변환하여 사무실PC와 스마트폰에 저장하였다.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치부책에 기록되지 않은 지인에게 어느 정도 선에서 성의를 표해야 하는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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