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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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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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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5. 1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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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競爭, competition)이란 같은 목적에 대하여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것을 말합니다. 생물이 환경을 이용하기 위하여 다른 개체나 종과 벌이는 상호 작용도 경쟁에 해당합니다. 경쟁의식은 남과 겨루어 이기거나 앞서려는 마음입니다. 벗어나는 것은 어떤 힘이나 영향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경쟁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벗어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경쟁의식이란 틀 속에 갇혀 시야가 좁아지고 발상의 전환을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경쟁의식 속에 갇혀 살아왔습니다. 아이가 자라 학교에 들어가면 시험을 통해 성적을 매기고 다음 단계의 학교가 결정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과 경쟁을 하고 마침내 직장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본격적으로 경쟁은 시작됩니다. 요즘은 기업의 조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예전에는 한결같이 피라미드식이었습니다. 최고경영자 밑에 임원들이 있고 임원들 밑에 부서장이 있고 그다음에 중간 관리자와 맨 아래 직원들이 있는 식입니다. 같은 회사에서 겉으로는 웃으며 함께 일하지만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이 서로에게 긴장감을 갖게 합니다. 심지어 직장의 상사는 은근히 부하 직원들의 경쟁심을 부추겨서 자신의 실적을 나타내려 합니다. 그래야 그 상사도 동료보다 나은 평가를 받고 승진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심은 대부분 열등감으로 발전합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경쟁심이 활용되기 보다 부정적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해치고 개인의 자존감도 낮아져서 나중에는 자신감마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10년 동안 창직 코칭을 하면서 제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조언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몸과 마음에 깊숙이 배어 있어서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경우에는 아직도 옛날 방식의 평가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애플이나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을 필두로 상대 평가를 하지 않고 절대 평가로 시스템을 바꾼 기업이 많습니다. 평가 시스템의 수정은 조직원의 동기 부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암기력이 뛰어나 시험을 잘 치르는 사람, 공부는 잘하지 못하지만 성실한 사람, 손재주가 있는 사람, 친화력이 있어서 호감을 주는 사람, 끈기는 부족하지만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 등등.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는 다중지능이론을 주장했는데 그는 지능이란 학습 능력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거나 특정한 분야에서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핵심은 다양한 자신만의 능력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경쟁의식을 줄이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생각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가지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쟁의식을 벗어나면 분명히 세상이 달리 보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한 시도는 우리를 깨어 있게 만듭니다. 경쟁의식에 갇혀 살면 좁은 세상을 살게 되지만 경쟁을 벗어나면 드넓은 세상이 펼쳐집니다.
출처 : 정은상의 맥아더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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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주의(原則主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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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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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4. 1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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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절대불멸의 황금률이 존재하고 순리와 이치와 원칙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그런 것들이 상호간에 준수해야 할 규약이며 세상을 움직이는 원천인 것이다. 그 것은 법과 도덕과 양심에 의해 지켜지며 종교적인 신념으로 더욱 공고해지기도 한다.
원칙은 보수와 진보에 의해 해석이 다르게 되기도 하고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기도 한다. 가장 쉽게 목도할 수 있는 것이 정치인들의 행태일 것이다. 또한 언론도 마찬가지로 해석을 달리해서 그 원칙을 주장한다. 원칙을 주장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원칙을 어긋나게 하여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나라에 큰 누(累)를 끼쳤으면 당연히 벌을 받고 사죄하여야 마땅하나 자신은 원칙에 어긋난 적이 없다고 강변한다. 누명을 쓰고 억울하다는 사람만 있고 죄값을 기꺼이 받겠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지도자를 비롯한 사회지도층에서 원칙을 이렇듯 훼손하니 일반대중들에게 원칙을 추상(秋霜)과 같이 적용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들을 존중하기가 쉽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을 헐뜯고 권력기관은 국민을 개, 돼지로 취급하는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원칙은 누구도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한 국가와 사회의 기틀이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이다. 공정과 상식은 원칙의 또 다른 얼굴이다. 원칙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완고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대의(大義)의 원칙과는 달리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원칙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사실에 대해 해석이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유일한 또는 최상이라는 믿음을 원칙이라고 착각하는 경우이다. 어떤 정보나 지식을 알려주면 그 진위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지식창고에 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 원칙에 어긋났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경로로 정보나 지식을 대할 때 잠시라도 배려심을 갖고 검증에 임하도록 해야 한다. 혹시 그 정보에 오류가 있다는 확신이 들어도 면전에서 무시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곧바로 따지지 않도록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선의에 의해 정보를 제공한 것이라면 더더욱 예의를 갖추어 검증해야 한다. 면전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면박을 주는 행위가 과연 원칙에 맞는 것인가? 어떤 사실을 말하는 사람의 속 뜻이 채 전달되지도 않았는데 오류가 있다고 거짓을 말한다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는 것이 과연 원칙에 맞는 것인가? 자신을 믿고 존중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원칙이라는 판단으로 무시하거나 비판하거나 멸시한 적은 없는가?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며 솔선수범의 자세로 원칙을 더욱 존중하되 타인에 대해서는 원칙을 들먹이지 말고 내가 믿는 원칙보다 더 소중한 그들의 내면을 보듬어주는 아량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런 말이 생각난다. 나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친구는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없다. 부족한 나를 묵묵히 응원해주는 친구가 진정 좋은 친구라는 믿음은 황금률과 같은 원칙이라고 확신한다.
지적질하고 싶어도 꾹 참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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