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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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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8. 1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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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세상이 답답하고 걱정스럽다고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세상이 제대로 잡혀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갈등이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다. 이렇게 서로를 헐뜯고 굴복시켜야 할 경쟁의 적(賊)으로 봐야하는 것인가?
세상의 보수와 진보는 고정불변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없다. 보수에 진보의 색깔이 입혀지고 진보는 보수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보수였던 사람이 진보로 돌아서기도 하고 진보였던 사람이 보수로 변신하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어찌 사람이 한결같을 수 있겠는가? 바람이 갈대를 휘젓듯 이리저리 휘어가며 성장하는 것인데 하물며 시대의 가치관이 변화하듯 개인의 가치관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변화의 흐름을 간과하고 무조건 변절자라고 기회주의자라고 매도하면 안된다.
상대진영의 의견을 경청하고 옳고 그름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협의해 나아가는 상생의 길을 택해야 한다. 사회의 어른으로서 지도자로서 언행을 점잖게 하고 중용의 미덕을 살려야 한다. 보수적인 안정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진보의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혜안과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이 사회의 어른이라면 한쪽에 치우쳐 이전투구하는 일부 못난 자(者)들을 엄히 꾸짖거나 때로는 다독이면서 함께 나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서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시켜야한다. 제 식구를 챙겨서는 안될 일이다. 보수이던 진보이던 사람의 성향을 가리지 말고 사익보다 나랏일을 먼저 걱정하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일할 수 있는 실력과 인품을 갖춘 인물을 등용시켜야 한다.
지금은 어떠한 가? 참담한 현실일 뿐이다. 이전 정권의 진보일색, 진보과반의 색깔을 보수일색, 보수과반의 시대로 바꾸려고만 하고 있다. 상대진영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 권력을 잡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다수의 대중을 안중에 두지 않고 마치 무도한 어리석은 자들을 가르치려는 듯 하고 있다. 이래서는 대통합은 커녕 대립과 갈등이 더욱 커질 뿐이고 우리나라의 위상도 점점 추락할 뿐이다. 우리는 아픈 상처를 가진 민족이다. 혼란한 시대에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서로를 죽이고 죽였던 참혹한 과거를 가졌고 아직도 그 상처가 덜 아물어서 한쪽에서는 공산주의 빨갱이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매국노 친일파라고 한다. 좌파들이 정말 북한을 동경하는 공산당 빨갱이인가? 우파들은 정말 뼈 속까지 친일파인가? 조금만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그런데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우측에 있으면 수구꼴통이라고 하고 한치라도 좌측에 있으면 좌익빨갱이라고 몰아 부친다. 제일 나쁜 놈들은 우파 좌파 편갈라서 이용하고 자기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일 것이다.
우익이면 어떻고 좌익이면 어떠하리요! 기회주의자라고 비아냥거리지 말고 서로를 인정하고 상호 경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해야만 한다. 어렵게 도달한 선진국 문턱에서 뒤로 물러나서는 안된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보수가 좌파세력을 다 때려 죽일 수 없고 진보가 우파세력을 몰살 시킬 수 없는 일이다. 끝없는 되돌림표에 따라 서로가 죽고 죽일 수 없는 일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다른 편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나의 친구이고 동료이고 친척이고 가족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50대, 60대, 70대 어른들은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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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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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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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7. 0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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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입대 직전의 일이다. 소위 계급장 달고 12주간 고된 훈련을 마친 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훈련소에 있을 때 가끔 여자친구 편지를 받아보고 많은 위로가 되었고 보고 싶었다. 오랜 만에 만난 여자친구 얼굴이 달라져서 내심 놀랐다. 퉁퉁 부운 얼굴을 보니 아마도 쌍거풀 수술을 한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다소곳하게 얌전해 보여서 대하기 편했는데 인상이 확 달라져 보이고 퉁명스럽게 대하는 그녀가 불편하고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보고 싶었던 마음과 하고 싶었던 말들이 사라지고 서로간에 쓸데없는 미련을 두지 않고 정리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차 한잔 마신 후 귀가길 버스로 배웅하면서 이별을 고했다. 그녀도 눈치 챘는지 버스에 타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뭔가 할말이 남은 듯한 아쉬움과 예상치 못한 이별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버스 창밖에서도 역력히 느낄 수 있어서 미안함 마음에 같이 타려고 잠깐 망설였지만 군입대 전에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듯 여지를 주지 않고 이별했다. 그 이후 세월이 많이 흐른 후 그녀와 함께 지냈던 학교 후배들에게 질책을 받았다. 그녀와 관계정리를 했으면 자기들에게도 귀뜸해주었어야 하는데 왜 안했냐는 거다. 그런 탓에 그녀와 당연히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내 소식을 그녀에게 물어보곤 했다는 것이다. 그녀 입장에는 이별을 당한 것도 불편한데 괜한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어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내가 배려심이 많이 부족했었다.
몇년 전 일이다. 오랫 동안 알고 지낸 친구와의 이별 이야기이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이기에 서로의 집과 가족에 대해서 너무 잘알고 있는 그야말로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그 동네에서 그 친구를 포함해 세명의 친구만이 중장년에 이를 때까지 서로 연락를 주고 받았다. 그 친구는 세명의 친구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암울한 어린시절을 보낸것으로 기억한다. 부친의 가정폭력과 가난함, 형제들간의 폭력... 그 친구는 세파에 찌들고 힘들게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일용직을 전전할 수 밖에 없었으나 다행히 눈치 빠르고 참을성 있는 덕분에 점차 먹고 살만한 안정된 가정을 꾸릴 수 있어서 다행스럽게 여겼었다. 그런 그 친구가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변했다. 자신과 친구들의 사정(財産)을 수시로 비교하거나 과거에 자신을 함부로(?) 대했던 기억을 끄집어내어 친구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 친구가 세 친구중에서 제일 어눌했고 지혜롭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느꼈을 것이다. 그 친구의 냉대(冷待)는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여서 그런가 보다 했으나 점차 노골적이고 타산적이며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결국에는 내 마음의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간의 속 마음을 숨기고 태연한 얼굴로 친구들 비위를 억지로 맞추어 주느라 그 친구는 오랜세월 고생했었고 그에 대한 댓가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냉정하게 돌아 선 것이다. 그 댓가라는 것은 친구 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친구란 그저 좋아서 사귀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신뢰가 쌓이는 것이지 자기의 입맛에 맞추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친구를 인정해주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친구와의 이별은 겪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그에 대한 회한을 남기지 않으려는 노력이 적잖게 필요했다.
최근의 일이다. 대략 5년여 정도 매월 골프 라운드를 함께하며 친분을 쌓았던 선배 한분이 있었다. 그 선배로 인해 골프 소모임을 만들고 제일 연배가 높은 그 선배가 회장직을 맡고 가장 아랫기수인 내가 총무를 하면서 뜻이 잘맞는 4명이서 재미있게 보낸 것 같았다. 그 간에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며 쓸데없는 농담과 익살스런 유머들을 나누며 우정과 신뢰가 어느정도 쌓였다고 여겼었다. 회장을 맡은 선배는 골프에 대한 열정이 지나칠 정도로 열심인 분이다. 라운드에 몰입하면 동반자에 대한 생각은 안중에 없고 본인의 볼과 스코어에 집착하는 모습을 종종 볼 때마다 거슬렸지만 예민해져있는 선배에게 감히 조언을 드리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본인의 스코어에 따라 마음의 기복이 심하고 즉흥적이며 경솔해보이는 면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우리 자신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해할 만한 일이라 여기고 마음에 두지 않으려 했다. 너무 안일하게 여기면 탈이 날 수도 있는 것 같다. 사업에도 방심하면 예기치 못한 곳에서 사달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 날 라운드 중에 여전히 자신의 플레이에 집착하는 그 선배에게 조언 아닌 “구찌”를 날린 것이 사달이 되었다. 가뜩이나 안풀리는 플레이에 잔뜩 기분이 상해서 예민해진 그 선배에게 본의가 절대 아니었지만 상당한 불쾌감을 주었던 것 같다. 불쾌감이 노여움으로 번진 것인지 그 날의 나의 이런 저런 행동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그 선배가 소모임에서 탈퇴했다. 회장이 탈퇴했으니 모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선배에게 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드리고 용서를 구했지만 받아주지를 않았다. 결국 내가 스스로 탈퇴를 하는 선에서 마무리졌지만 잘못에 대해 먼저 주의를 주든가, 반성할 기회를 주는 것이 5년여간 총무로서 봉사한 후배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아쉽게 생각해본다. 혼을 내더라도 예고없이 어퍼컷을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쨉으로 적절히 경고를 날리는 것이 맞는 일이다. 그 선배의 인품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나의 불찰이 크다고 여기려니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우리는 어떤 인연으로 부터 불가피하게 헤어져야 할 일이 생길 것이다. 헤어질 때 언제든 다시 만날 것 처럼 하라는 말이 있다. 칼로 무를 자르듯 하지말고, 되돌아 갈 다리를 몽땅 불태우지 말고 여지(餘地)를 남기라는 것이다. 현재의 인연을 소중히 하고 헤어질 인연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경솔하지 말고 예의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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